용서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

마태오 복음 18장 21절부터 35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용서에 대해 당부하시는 부분이다. 우선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형제가 자신에게 죄를 지으면 일곱 번까지 용서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시며 뒤이어 매정한 종의 비유를 통해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용서에 대한 당부와 가르침은 그토록 분명하지만 그 말씀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뿐 아니라 용서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조차 우리에게는 어렵게만 느껴진다.
용서가 그토록 어려운 것은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연약한 존재이고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받는다. 문제는 누구도 그 상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그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상처를 그냥 방치하면서 스스로 그 상처가 잊혀지기를 바라거나 스스로 잊어버리려고 노력한다. 물론 받은 상처가 작고 사소하다면 시간과 함께 자연스럽게 치유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상처란 이제 잊혀졌다고 생각을 해도 내 기억 속에 은밀히 숨어 있다가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거나 그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면 나도 모르게 뛰쳐나와 내가 생각하거나 바라지 않았던 상황으로 몰고 가게 만든다.
상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바로 용서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용서란 내게 상처를 준 그 사람에게 무언가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용서란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상처 받은 내 자신을 위한 것, 내가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한 것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용서에 대해 갖고 있는 두 번째 오해는 용서란 잊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사람이 내게 준 상처가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거나, 적어도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흔연스럽게 그 사람을 대할 수 있어야 용서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오해이다. 그냥 잊혀진다면 내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또한 상처가 클수록 그리고 오랜 된 것일수록 절대 그냥 잊혀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용서에 대해 갖고 있는 세 번째 용서는 화해하지 않으면 용서하지 못한 것이라는 오해이다. 우리는 흔히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하려면 그 사람과 화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시도를 한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의 마음마저 내 뜻대로 할 수는 없다. 내가 용서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 뜻을 꼭 따라야 할 필요도 없다. 물론 용서란 궁극적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소망하는 것을 포함하지만 반드시 깨진 관계가 회복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용서는 적어도 시작 단계에서는 일방적인 행위로 시작된다.
용서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정리하고 나면 이제 어떻게 용서해야 할 것인가를 정리해보자.
우선 첫째로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이다. 용서하기 위한 첫걸음은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솔직해지는 일이다. 특히 상처는 내 감정에 받은 것이기 때문에 내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담백한 마음이 첫 번째로 갖추어야 할 영적 장비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한편으로는 상처를 입은 것 자체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상처를 떠올리면 이미 지난 순간의 일이지만 그 고통이 생생하게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상처를 인정하지 않으면 치유할 수도 없다. 용서란 잊는 것이 아니라 똑바로 바라보고 기억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상처를 주었던 상대방의 구체적인 언행과 그것이 내게 끼친 영향까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용서를 위한 두 번째 요령은 조급해 하지 않는 것이다. 용서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육체의 상처도 한 번의 치료로 치유되지 않듯이 마음의 상처 역시 깊을수록 용서하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용서는 하나의 과정임을 이해해야 한다. 한 번에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여러 번의 용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여기에서 용서의 세 번째 요령이 나온다. 한 번에 조금씩 용서하라는 것이다. 상대방을 한 번에 전적으로 용서한다는 것은 어렵고 거의 확실히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용서가 어렵다고 느끼고 실패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용서하려고 스스로에게 과부하를 걸고, 그리고 그 당연한 결과로 실패할 때 상처의 고통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커진다. 그 사람을 용서하려 했지만 실패했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에 대해 전보다 더 비참한 감정을 갖게 되고 그전보다 더 심한 죄책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나를 아프게 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내가 용서에 실패한 것도 상대방이라는 미움도 더 커지게 된다.
고통을 치유하는 용서는 상대방의 구체적인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야지 상대방의 존재나 상태를 한 번에 용서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용서의 치유는 한 번에 조금씩 실행된다. 우선 그의 말 한 마디,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어 그것을 용서하다보면 과거의 상처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을 것이지만, 한 번에 전면적으로 용서하려고 애쓴다면 필경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기억해야 하는 용서의 또 다른 방법은 기도이다. 기도는 우리가 용서의 과정에 들어섰음을 확인시켜주는 가장 믿을만한 표지이다. 물론 처음서부터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는 너무 어려울 수 있다. 어쩌면 용서의 첫 과정에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기도는 우리에게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뿐일 수 있다. 하지만 기도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며 그 효과는 매우 강력하다. 그래서 기도는 다른 이들을 용서하고 자기 치유를 실현하는 여정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용서를 위해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손을 잡고 우리와 함께 그 용서의 여정을 시작하신다. 하느님은 분명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 역시 당신의 자녀이며 그들 역시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임을 깨닫게 해주실 것이다.

2016년 3월 후원회미사 이성근 사바(베네딕도회 서울분원장)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