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년이 지났습니다만, 지난 해 여름 무더위 중에, 78세의 새 교황님이 자신의 여름휴가를 포기하고 우리나라를 방문하셨습니다.
아시아에서 첫 번째 방문지입니다. 왜 일까요?

교황님의 교황 사도직 청사진에 따르면, 교황님은 교회의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계십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복음의 기쁨 」, 25항)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황님께서는 전세계에 만연되어 있는 종교와 신앙의 위기에 직면해서 어디에선가 신앙의 쇄신 또는 새로운 복음화의 동력을 구하고 싶은데, 우리나라에 그 가능성이 있다고 보신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한국천주교회는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무엇이 바뀌었나요?
교황님이 한번밖에 안 오셔서 아직 바뀌지 않은 걸까요?

널리 알려져 있듯이, 교황님 자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참 신앙을 철저하게 실천 해오신 분이십니다.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꿈을 꾸며, 자신과 함께, 가난한 이웃들의 필요에 적극적으로 응답함으로써 ‘복음의 기쁨’을 스스로 맛보고 그 넘치는 기쁨을 이웃에게 생생하게 전해주는 일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교황님의 그런 간절한 소망에 대해 우리 한국천주교회는, 신뢰와 호의에 대한 보답으로서라도,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앞장서서 응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루 세 번씩 바치는 삼종기도는 대단히 훌륭한 기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진리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주춧돌에 해당되는 ‘육화’(incarnatio) 또는 강생의 신비를 담고 있는 핵심 성경 구절을 묵상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서론(1,1-18)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만, 우주 만물을 지어내신 영이신, 곧 물체가 아니신,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의 살을 입고 태어나 우리와 똑같은 조건 속에서 살며, 진리를 풀어 설명하시고 모범을 보이시다가, 시비가 붙어 십자 처형을 당하시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승에서 영혼과 육신으로 합성되어 한 몸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처지를 고려하시어,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시기 위한 겸허한 결단이었습니다.
참으로 우리 인간은 동물에게는 없는 이성 능력을 갖추고는 있습니다만, 육신(동물)에게 참으로 요긴한 기능인 눈, 코, 입, 귀, 손의 오감의 활동에 힘입어 그것들을 기초로 물질적인 지식은 물론 영적인 지식도 얻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 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가엾은 처지를 고려하시어 영이신 분께서 한없이 낮추셔서 이 답답한 물질세계의 족쇄를 스스로 걸머지셨던 것입니다.(필리 2,6-8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신약의 핵심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두고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께 이르는 길, 문, 징검다리, 디딤돌, 손가락질, 사다리, 성사입니다.
예수께서는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가르치시는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 참되시기에, 나는 그저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
할 따름이다."(요한 8,26)
"아버지,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요한 17,17)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 그리고 예수님은 언젠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요한 15,13)

예수께서 걸어가신 진리의 길을 상기시켜 주는 십자가를, 우리는 우리 집과 각자의 방과 자동차, 목걸이와 묵주 등에 배치함으로써 잊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뿐만 아니라,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기도할 적마다 우리 자신의 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십자성호를 긋습니다.

어떤 물건에 십자 표시를 하는 것은 ‘축성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십자성호는 이 몸이 십자가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것으로서, 온전히 그분의 뜻대로 사용하겠다는 다짐이어야 합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17)
예수 그리스도가 그 모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자체이며 언제나 자신을 내주어 남들을 살리는 성체를 우리 몸 안에 받아 모시고 그렇게 살아계신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고, 그분이 꿈꾸던 것을 꿈꾸며, 그분이 즐겨 만나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만나, 예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그분처럼 사는 일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생생하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모든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그 그리스도를 실제로 사랑하며, 그렇게 하여 진리를 증언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신비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를 바라십니다. (「사목헌장 」 93항)
"하느님이 예수로 강생하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는 하느님에 대한 태도로 귀결됩니다. 즉 우리가 하느님과 맺는 관계의 진정성은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의 진정성에 의해 증명됩니다.“ 「레오나르도 보프, 교회의 권력과 은총 」, 53쪽)

올바른 길과 빗나간 길이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가장 확실한 기준, 곧 영적인 진정성을 판가름하는 단 하나의 기준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로 인도하는 모든 것은 진정으로 그리스도교적인 것입니다.” (프랑수와 바리용 신부,「 흔들리지 않는 신앙 」, 119쪽)

진정한 믿음, 진실된 사랑은, 아니 내세우는 모든 가치의 진정성은, 그것을 위해 치른 희생의 크기로 판가름 납니다. 무엇을 기꺼이 내어 놓을 수 있는가, 그리고 실제로 내어 놓았는가가 핵심 열쇠입니다.

2015년9월 후원회미사, 이재룔 시몬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