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신학교에서 신입생들 영성지도를 하고 있는 정 태영 멜라니오 신부라고 합니다. 영성 아카데미는 어떤 곳인가 궁금하기도 하던 차에 이렇게 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올해에 제가 맡은 학생들은 신학과 1학년들입니다. 서른 살이 넘은 늦깍이 신입생도 있는가 하면 이제 막 고등학교를 마치고 들어온 앳된 학생들도 있습니다. 모두 사제직을 향한 부르심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제직을 향해 나가는데는 여러 가지 많은 노력을 하고, 수련을 닦아야겠지만 그가운데 제가 학생들을 돕는 부분은 영적성장(the growth of spirituality)입니다. 영적 성장을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제 나름대로 고민하다가 선택한 방법은 ‘쪽지수행’입니다.

성경을 읽고 그 가운데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을 쪽지에 옮겨적고 그것을 수시로 반복해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읽고(lectio), 그 말씀을 사랑하고(affectio), 그리고 가슴깊은 곳에서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대화, 즉 기도(oratio)로 나아가는 아주 오래된 수행법입니다.

간단하지만 아주 강력한 이 방법을 저도 한 십 년째 실천하고 있습니다. 지금 읽는 성경의 본문이 언젠가 쪽지수행을 통해 제 마음 속에 머물렀던 다른 ‘말씀 한 구절’을 통해 다시 더 넓게 이해되고, 하느님을 알아가게 되고 그랬습니다.

또 그냥 지나가는 일상과 성경말씀을 품고 살아내는 일상은 ‘삶의 질’이 다른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시선으로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지요. 최근에 제가 저의 ‘파피루스’에 옮겨적고 입으로 소리내고 마음에 붙여두고 있는 성경구절은 사도행전 10, 44절입니다.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ἐπι πά́ντας τοὺ̀ς ἀκού́ντας τὸ̀ν λό́γον)입니다.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성령이 내렸다는 부분인데 한번에 기억할 수 있는 만큼만 잘라서 옮겨적고 되뇌이는 것입니다.

신학생들에게 이런 방법을 알려주고 실천하게 해보니까 어떤 학생들은 잘하는데 어떤 학생들은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몇몇은 자기 책상 앞에 한구절 적어서 붙여놓고 자주 들여다 보는가 봅니다. 다른 신부님들이 연학실에 가보니까 안보이던게 붙어 있다고 하기도 합니다. ㅋㅋ

학생들은 이렇게 말씀수련을 실천하다가 한달에 한번씩 저랑 면담을 하게 됩니다. 면담 때 제가 던지는 질문은 미리 정해 놓았습니다. ‘요즈음 너의 마음 속에 머물고 있는 성경말씀은 무엇이냐?’ ‘그 말씀이 주는 느낌이나 메시지는 어떤 것이냐?’....

그렇게 질문하면 학생들은 자기 마음속에 머물고 있는 성경구절이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함께 성경 속에서 다시 찾아서, 소리내어 두 세 번 같이 읽어봅니다. 저는 그 시간이 참 좋습니다. 학생의 마음 속에 머물렀던 구절이 이제 제 마음 속으로 옮겨 오는 것이지요. 학생의 성대를 거쳐 선포되는 그 말씀과 제 소리가 어우러져 본래하나이셨던 말씀이 서로 만나는 것입니다.

지난 달에 면담한 학생 하나는 자기 마음 속에 머물고 있는 말씀이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탈출 14, 12)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이제 마악 시작하는 신학교 생활이 자기 내면에서 마치 모세가 광야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려 할 때 이집트인들을 섬기던 시절을 오히려 그리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처럼 느껴졌나 봅니다. 잠깐 미소가 지어졌었습니다. ㅎㅎ

여하튼 말씀은 우리의 내면에 작용을 하고, 우리의 내적인간을 깨워 하느님께로 인도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의 계획이나 경험이나 기대를 벗어나는 초월적인 실재(a transcendent reality)입니다. 그러나 분명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그분의 뜻입니다. 말씀은 그 길의 인내자이십니다. 우리 영혼의 목자이십니다.

여러분 말씀에 순명(Obedience = Ob + audire : 바짝 귀기울이다.)하며 살아갑시다. 영성생활은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 뜻대로, 하느님의 말씀이 이끄시는 대로 살고자 하는 희망입니다.

2015년5월9일, 후원회미사, 정태영 멜라니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