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사 때마다 평화의 인사를 하기 전에 이 성경구절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하셨다는 대목입니다. 사랑이 여러 가지이고 그중에는 값싼 사랑이 섞여 있는 것처럼 평화에도 값싼 평화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은 ‘내 평화’를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평화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평온하고 화목함”,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평화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부부라는 관계는 누구의 강요도 없이 서로가 좋아서 이루어진 관계입니다. 때로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 가정을 이루게 되고 독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서로를 자신의 반쪽으로 삼아 새로운 삶을 살고자 결심을 하고 결혼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에서조차 평화, “평온하고 화목함”,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한 상태”를 이루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 둘보다 더 큰 공동체, 가정, 이웃, 직장, 국가, 세계라는 단위에서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겉으로라도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합의와 그 합의를 지켜주는 강제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상식의 힘, 사회의 불문율, 교육, 법, 경제력 등 질서를 유지하는 여러 가지 힘들이 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과 시기, 질투, 미움, 두려움, 등등의 많은 갈등의 요소들로 쉽게 이런 질서는 깨어지고 평화도 깨어집니다. 사소한 말다툼에서 흉악한 범죄, 그리고 테러와 전쟁까지. 이렇게 억지로 유지되고 쉽게 깨어지는 평화를 참된 평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많은 힘들이 동원되는데도 쉽게 평화가 깨어지는 이유는 그만큼 갈등의 요소도 크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유지하는 힘들은 ‘없는 이들’, 힘없고 돈없고 능력없는 이들이 ‘있는 이들’의 몫을 함께 누리려는 것을 막는데 대부분의 힘을 쏟고 있습니다. 있는 이들이 원하는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평화의 길이라고 봅니다. 없는 이들의 불만과 억울함은 더 커지고 그들은 낙오자나 범죄자, 악의 축으로 규정되어 그 격차도 커져만 갑니다. 빈부의 차가 개인 간에도 국가 간에도 더 벌어져만 가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없는 이들을 견제하고 있는 이들의 힘을 키우는데 더 많은 힘을 쏟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주는 평화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어떤 것입니까?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더 큰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격차를 줄이고 함께 살게 하는 것입니다. 앞서 가는 길보다 함께 가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남보다 앞서고 남을 딛고 서지 않으면 뒤쳐져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주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것이 더 좋은 길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억울함과 절망 속에서 미움이 자라는 사회가 아니라 감사와 배려와 감동을 통해 희망을 키우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나친 경쟁 속에서 우리는 혹시 이런 평화의 가능성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을 통해 갈등의 상처를 치유하고 당신의 평화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참된 평화는 참된 행복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예수님을 따라 그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만이 지킬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평화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예닮영성 심화길잡이 중에서-